심리학

심리학의 오해 10판(과학에서의 통합성) - 저자 키이스 스타노비치

율미로그 2025. 8. 29. 15:14

단지 심리학은 인간 행동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심리학을 다른 학문 분야들과 차별화시킬 수 없다. 다른 많은 전문가 집단과 학문 분야들, 예컨대 경제학, 법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인류학, 그리고 여러 문학을 포함한 분야들도 부분적으로는 인간 행동에 관심을 갖는다. 이 측면에서는 심리학이 전혀 독특하지 않다.
현실적 적용도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아무런 독특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예컨대, 많은 대학생들이 심리학을 전공하려는 이유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갸륵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학문분야에서의 응용 영역이 된다. 예컨대, 사회복지학, 교육학, 간호학, 업무진단과 치료, 신체 치료, 경찰학, 인적자원학, 언어치료 등을 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담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응용전문가들을 길러낸다는 목표가 심리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의 존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을 통하여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교육학, 사회복지학, 경찰학, 간호학, 신학, 업무진단과 치료 등의 분야에서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영역이다.
오직 두 가지 사실만이 심리학을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당화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심리학이 인간과 동물의 모든 행동을 과학적 기법을 가지고 연구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지식으로부터 유도해 내는 응용기법들이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것이 참이 아니라면, 심리학이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된다.
심리학은 일반대중에게 두 가지를 보장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다른 행동과학 분야들과 어느 정도 차별화된다. 하나는 심리학이 내놓는 행동에 관한 결론들이 과학적 증거에서 도출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심리학의 현실적 적용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도출되어 왔으며 또한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된다는 점이다. 심리학이 이러한 두 가지 목표에서 벗어난 적이 있는가? 매우 자주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 이 책은 어떻게 그러한 목표를 보다 잘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제12장에서 심리학자들이 적합한 과학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아무튼 원리상으로는 이 두 가지가 심리학을 독자적 학문 분야로 정당화시켜 주는 기준이다. 만일 심리학이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결정하게 된다면, 즉 과학 기준에 충실히 하고자 원하지 않는다면, 백기를 들고 심리학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다른 학문 분야에 헌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심리학은 지적 관심사를 추구하는 학문 분야로서 철저하게 군더더기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취해야만 하는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는 중요한 단계는 심리학의 정의 속성(defining attribute)이 행동에 관한 데이터 기반 과학연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이 사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함의를 포착하는 것이 심리학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에,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그 함의를 다루는 것이 될 것이다. 역으로 사람들이 심리학에 관한 생각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일차적 원인은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예컨대, 심리학과 무관한 사람들이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는 경우를 아주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 어째서 이러한 일이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일반대중을 호도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원천에서 유래한다. 후속 장들에서 논의하게 되겠지만, 심리학에 관한 많은 오해들은 엉터리 사이비 심리학은 조달하는 작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지 심리학일 수 있으며 심리학의 주장을 평가할 수 있는 합리적 잣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반대중을 호도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사이비과학 신념 체계를 이용한 엄청난 사업이 성장해 왔다. 이렇게 호도함으로써 과학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거나 아니면 많은 경우에 가용한 증거와 상치되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가 치료 사업의 수많은 기법들과 함께, “최면을 통한 체중 감소법”, “당신의 숨겨진 염력을 발달시키자”, “잠자면서 프랑스어를 배운다” 등등을 선전해 댈 수 있는 완벽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 심리학에 저항하는 또 다른 원천은 의심받지 않는 권위와 “상식”이 오랫동안 지배하여 온 영역으로 과학이 확장되는 것에 반대하려는 경향성에서 유래한다. 역사는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철학적 사변, 종교적 칙령, 또는 민속 지혜를 사용하기보다는 과학을 이용하려는 시도에 일반대중이 우선적으로 저항하였던 많은 사례들을 보여준다. 모든 과학은 지금처럼 발달하기까지 저항의 시기를 극복해 왔다. 갈릴레오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학자들은 그의 새로운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목성에 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철학적·종교적 신념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수세기 동안 쩔뚝거리듯이 더디게 진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체를 절단하는 것을 일반대중과 기독교가 모두 금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기독교적 견해는 우리의 신체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Grice, 2001 참조). 찰스 다윈은 끊임없이 비난받았다. 폴 브로카(Paul Broca)가 설립한 인류학회는 프랑스에서 반대에 부딪혔는데, 인간에 대한 지식이 국가를 파멸시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려는 모든 과학적 시도는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과학 연구를 통해서 인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성취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에 따라서, 이러한 저항이 결국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작성한 은하계의 지도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의 구조에 관한 난해한 이론들이 우주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을 파괴한다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날 사회에서 사용가능한 건강관리법을 인간의 시체를 합법적으로 해부할 수 없었던 시대에 사용하던 방법으로 대체할 사람이 있겠는가? 별이나 인간 시체에 대한 경험적 태도로 인해서 인간성이 훼손된 것은 아니다. 보다 최근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유전학과 생물학의 놀라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본질과 그 기원에 접근하게 되면 구태의연한 반대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에서 몇몇 정치가들은 아직도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계속해서 압력을 가하며, 여론조사를 보면 (비록 유럽인들과 캐나다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비율의 미국인들이 인간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하였다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화생물학이 과학적 성취의 장구하고도 인상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반대중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면, 인간에 관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신념을 최근에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끌고 나온 심리학을 현재 일반대중이 그 타당성을 부정하려고 한다고 해서 무슨 놀라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