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과학에서의 오류

율미로그 2025. 9. 11. 18:58

과학에서의 오류 : 진리에 접근하기
반증 가능성 원리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우리는 과학 발전의 한 가지 단순한 모형을 개략적으로 기술하였다. 이론을 제안하고 그 이론으로부터 가설을 도출한다. 가설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논의할 다양한 기법을 가지고 검증한다. 만일 실험이 그 가설을 확증한다면, 그 이론은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된다. 만일 실험이 그 가설을 반증한다면, 어떤 면에서든지 그 이론을 변경하거나 아니면 보다 우수한 이론을 위하여 폐기시켜야만 한다.
물론 과학 지식이 잠정적이며 이론에서 유도한 가설이 틀렸을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확증되어서 향후의 실험을 통해 전복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법칙(law)이라고 명명한 많은 관계들이 존재한다. 어느 날 혈액이 순환하지 않는다거나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찾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보편적인 사실은 우리가 논의하여 온 유형의 가설이 아니다. 이 사실들은 잘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진리의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측면들, 즉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확증되지 않은 현상들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과학의 이러한 측면, 즉 과학자들이 진리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치중하고 철저하게 확증된 것(소위 법칙)들을 무시한다는 측면이 일반대중에게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이다. 마치 과학자들은 언제나 알고 있는 것보다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참이며,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과학자들은 지식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알고 있는 것의 경계 바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물론 이곳이 바로 불확실한 현상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과학은 지식의 경계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자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과학자들이 일반대중에게 “불확실한” 사람들로 보이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지각은 잘못이다. 과학자들은 지식의 경계, 즉 우리의 이해가 현재진행형으로 진보하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만 불확실한 것이다. 반복 검증을 통해서 잘 확립되어 온 많은 사실에 관해서는 결코 불확실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관찰에 근거하여 이론을 반증하는 것 그리고 반증된 옛 이론을 새로운 이론으로 대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옛 이론을 구축하였던 과거의 모든 사실들을 폐기처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해야만 하겠다(이 문제는 제8장에서 자세하게 논의한다). 정반대로 새로운 이론은 옛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사실뿐만 아니라 옛 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도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한 이론의 반증은 과학자들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복잡한 이론은 절대적으로 타당하지는 않더라도 대체로 타당할 수 있으며, 생각은 적확하게 참은 아닐지라도 진리에 점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Radcliffe Richards, 2000).
공상과학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잘못의 상대성”(The Relativity of Wrong)이라고 이름 붙인 유명한 글에서 이론의 수정 과정을 깔끔하게 예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지구 모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다듬어져 왔는지에 대해서 적고 있다. 첫째, 그는 평평한 지구라는 옛날 신념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평원(문자를 가지고 있는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곳)에서는 지구가 지극히 평평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모프는 상이한 이론들에 대한 정량적 비교가 무엇을 밝혀낼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우선 상이한 이론들이 가정하는 마일 당 곡률(curvature permile)에 따라서 그 이론들을 표현할 수 있다. 평평한 지구 이론은 틀렸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사실에 가깝다. 아시모프(1989)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리스토 텔레스 이후 한 세기 가량이 지난 후에 그리스 철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이 상이한 위도에서 길이가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만일 지구의 표면이 평평하다면 모든 그림자의 길이는 동일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림자 길이의 차이에 근거하여 지구 구면의 크기를 계산하였으며, 원주가 대략 25,000마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구면의 곡률은 마일 당 대략 0.000126도에 해당하며, 이 값은 보는 바와 같이 마일 당 0도에 아주 가깝다. … 0과 0.000126이라는 지극히 미미한 차이가 평평한 지구로부터 둥그런 지구로 넘어가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리게 된 사실을 설명해 준다. 0과 0.000126과 같이 아주 미미한 차이가 그토록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만일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지구가 평평한 표면이 아니라 구면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큰 영역에 대해서 결코 정확하게 지도를 그릴 수 없게 된다.
물론 과학은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론을 가능한 한 정교하게 만들고 현재 지식의 한계를 검증하고자 시도한다. 예컨대, 뉴턴의 중력 이론은 지구가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고 예언하였으며, 이 예언은 실제로 확증되었다. 지구는 적도에서 약간 튀어나왔으며, 극지방에서는 약간 평평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모양을 편구면(扁球面, oblate spheroid)이라고 부른다.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의 직경은 2,900마일(대략 12,713킬로미터)이며, 적도의 직경은 7927마일(대략 12,757킬로미터)이다. 지구의 곡률은 (완벽한 구에서와 같이) 일정하지 않다. 마일 당 7.973인치에서 9.027인치까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시모프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구면에서 편구면으로 진행되는 수정은 평면에서 구면으로 진행되는 수정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하자면 지구가 구면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만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구 모양에 대한 아시모프의 사례는 과학자들이 실수, 오류, 또는 반증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맥락을 예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검증하고 있는 이론이 모든 측면에서 엉터리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지식은 잠정적이며 미래의 발견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다고 말할 때는 바로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상황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구면이라고 믿었을 때, 과학자들은 그 이론이 언젠가는 세부 사항에서 변경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렇지만 구면으로부터 편구면으로의 변경은 지구가 구면이라는 “대처로 올바른”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지구가 육면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임상심리학자 스콧 릴리엔펠트(Scott Lilienfeld, 2005)는 심리학도들을 위해 아시모프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과학지식은 생래적으로 잠정적인 것이며 개정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서명할 때, 어떤 학생들은 진정한 지식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잘못 결론 내리기도 한다. 특정한 포스트모더니즘 집단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생각은 보다 확실한 지식과 덜 확실한 지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과학이 절대적 확실성을 획득할 수 없을지라도,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 같은 어떤 과학적 주장은 명명백백하게 입증되어 온 반면에, 점성술 12 궁도를 떠받치고 있는 이론과 같은 것은 설득력 있게 반박되어 왔다. 인지부조화 이론과 같은 다른 이론들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과학적 주장에는 확신도의 연속성이 존재한다. 어떤 이론은 실질적으로 참이라는 위상을 획득한 반면에 다른 이론들은 철저하게 반증되어 왔다. 방법론적인 문제가 과학적 물음에 완벽하게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며 그러한 답은 원리상 새로운 증거로 인해서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지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지식은 잠정적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확실한 지식을 내놓아야만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과학 자체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하는 데 사용되기 십상이다. 고고학자 닐 슈빈(Neil Shubin)은 창조론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과학 작가 나탈리 앤지어(Natalie Angier)와의 인터뷰에서 슈빈(2007)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 “창조론자들은 우선 과학은 사실과 확실성의 집합체라고 채색하고자 시도한 다음에, 이러저러한 ‘확실성’이 결국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고 공격한다. 창조론자들은 ‘아하! 당신은 확신할 수가 없군요. 그러니 믿을 수 없지요. 어째서 우리가 당신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까?’라고 부르짖는다. 아무튼 창조론자들은 무엇보다도 과학의 절대적 확실성이라는 허수아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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