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심리학의 오해 10판(프로이트와 반증 가능성) - 저자 키이스 스타노비치

율미로그 2025. 9. 6. 10:57

20세기 초엽 칼 포퍼는 어떤 과학이론들은 새로운 진보와 지식으로 이끌어 가는데 다른 이론들은 지적(知的) 정체현상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기저 원인을 탐색하였다. 예컨대, 전자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관찰(즉, 멀리 떨어진 별로부터 오는 빛은 태양 주위를 통과할 때 휘어진다는 관찰)로 이어졌는데, 놀라운 까닭은 많은 가능한 사건들이 그 이론의 예언과 상치되어 이론은 반증할 수 있도록 예언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포퍼는 정체된 이론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하고는, 한 예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지목하였다. 프로이트 이론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개념 구조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사전에 그 사건을 예언하지는 못한다. 이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포퍼는 바로 그러한 특성이 이론을 과학적으로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론이 아무런 특정한 예언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지지자들은 이 이론이 개인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대규모의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사를 설명할 수 있도록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여 왔지만, 이론을 사후약방문식 설명의 풍부한 원천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 바로 이 이론으로부터 과학적 유용성을 박탈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은 현대심리학 이론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촉매제로 보다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심리학 내에서 이 이론이 그토록 쇠퇴하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 반증 가능성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의 존재는 실제적인 해악을 초래한다. 예컨대, (부분적으로 유전적인 장애인) 자폐증의 원인에 관한 설명은 정신분석학적 설명으로 인해서 막다른 골목에 갇히고 말았다. 정신분석학적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은 자폐증의 원인으로 (냉장고 같이 차가운) “냉정한 어머니”라는 오늘날에는 폐기 처분된 생각을 널리 퍼뜨렸으며, “유아기 자폐증을 촉진시키는 요인은 자신의 아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부모의 소망”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해악을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폐증 연구를 방해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사례로 투렛 증후군(Tourette syndrome)의 역사를 살펴보자. 이 증후군은 특징적으로 돼지처럼 꿀꿀거리거나 개처럼 짖어대는 발성 증상, 말 반복증(echolalia : 다른 사람의 말을 불수의적으로 반복하는 증상), 그리고 외설 반복증(coprolalia : 음담패설의 강박적인 반복) 뿐만 아니라, 안면 경련과 신체의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투렛 증후군은 중추신경계의 기질성 질환이며, 오늘날에는 약물치료를 통해서 치료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투렛 증후군 환자들은 박해를 받아왔다. 중세기에는 종교집단들이 마귀로 간주하였으며, 상당히 최근까지도 푸닥거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이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이해가 1921년부터 1955년까지 상당히 지체되고 말았는데, 이 시기에는 투렛 증후군에 관한 설명과 치료를 정신분석학적 개념화가 주도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이 증후군에 대한 반증 불가능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로 모호하기 짝이 없는 설명들이 과다하게 팽창하여 이 증후군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개념적 혼탁성을 초래하였으며, 정확한 이해를 향한 과학적 진보를 차단하고 말았다. 예컨대, 쏜톤(E. M. Thornton, 198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투렛 증후군은] 대뇌 질환 연구에 대하여 정신분석학이 미친 역행적 효과에 관한 고전적인 사례이다. 라 투렛은 이 증후군이 대뇌의 퇴화 과정 때문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금세기 전반부에 프로이트 이론이 유행하게 됨에 따라서, 이 증후군에 대한 관심사가 대뇌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 이러한 퇴행적 움직임의 결과로 환자들은 신경과 의사 대신에 (일반적으로 정신분석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짐으로써, 신체검사와 분석이 수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피로 등(Shapiro, Shapiro, Bruun, & Sweet, 1978)은 자신의 환자가 “안면경련을 멈추려 하지 않는 이유는 안면경련이 성적 쾌감의 원천이 되며, 무의식적 성적 추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한 정신분석학자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정신분석학자는 안면경련이 “수음의 상동적인 대응물이며 … 성감과 연계된 리비도가 신체의 다른 부위로 대치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세 번째 정신분석학자는 안면경련을 “항문 변태성욕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전환 증상”으로 간주하였다. 네 번째 정신분석학자는 투렛 증후군 환자가 “자기애적 지향성뿐만 아니라 강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환자의 안면경련은 “감정 증후군, 즉 의도적인 감정에 대한 방어를 나타낸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무지에 의한 과신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발달심리학자 제롬 케이컨(Jerome Kagan, 2006)은 “프로이트의 사도로서 투렛 증후군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산도르페렌찌(Sandor Ferenczi)가 어떻게 투렛 증후군 환자의 빈번한 안면경련이 수음 욕구가 억압된 경과라고 기술하면서 위에서 기술한 정신분석학자들과 똑같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초래된 이론적 상황에 대한 사피로 등(1978)의 다음과 같은 요약은 반증 가능성 기준을 무시함으로써 야기되는 악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유형의 정신분석학적 이론화는 근거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안면경련은 전환 증세이지만 히스테리는 아니며, 항문기적이며 동시에 호색적이고, 자의적인 동시에 강박적이며, 기질적인 동시에 역동적 근원을 갖는다. … 이러한 심리학적 이름 붙이기, 진단, 그리고 치료가 불행하게도 일반적으로는 아무런 자책감도 없이 상당히 독단적인 태도와 함께, 그리고 상당한 해악을 가진 채, 환자와 그의 가족에게 행해졌던 것이다. … 이러한 논문들은 뒤따르는 광범위한 영향으로 인해서 이 증후군의 이해와 치료에 불행한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투렛 증후군의 치료와 이해에서의 진보는 연구자들이 정신분석학정 “설명”이 공허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다. 정신분석학적 설명은 마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유혹적이었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후라면 모든 것을 설명해 냈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한 설명은 실제에 있어서는 이해하였다는 착각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함으로써 그 이상의 진보를 향한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진보는 이론이 모든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관한 특정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사전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세부적인 예언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론으로부터 도출한 예언은 틀릴 수 있지만,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바로 강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