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반증 가능성 기준
벤저민 러쉬는 자기 치료법의 효과를 평가할 때 한 가지 치명적인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증거 평가 방법은 자신의 치료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환자의 회복이 출혈 치료법(따라서 자신의 의학 이론)의 확증을 의미하였다면, 환자의 죽음은 반증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야만 공정한 방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증 사례들을 다른 방식으로 합리화하였던 것이다. 러쉬의 방식대로 증거를 해석하게 되면 과학에서 이론 구성과 검증에 관한 가장 중요한 규칙 한 가지를 위반하게 된다. 즉,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반증할 수 없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과학 이론은 항상 그 이론으로부터 유도해 낸 예언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진술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특정한 이론과 관련된 새로운 증거를 평가하는 방법은 언제나 데이터가 그 이론을 반증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원리를 흔히 반증가능성 기준이라고 부르며, 과학 발전에서의 그 중요성은 칼 포퍼(Karl Popper)가 아주 강력하게 주창하였다. 포퍼는 과학철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그의 저술들을 광범위하게 탐독하고 있다.
반증 가능성 기준은 어떤 이론이 유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으로부터 도출한 예언이 충분하게 상세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규정한다. 이론은 대단히 불리한 입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만 한다고 진술함으로써, 다른 특정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후자의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론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확실한 단서를 갖게 된다. 그 이론은 수정될 필요가 있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을 취하든 진리에 더 가까워진 이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만일 이론이 어떤 것이든 가능한 관찰을 배제한다면, 그 이론은 결코 변화될 수 없으며, 진보의 가능성은 전혀 없이 현재의 사고방식에 고착되고 만다. 따라서 성공적인 이론이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이론은 스스로 예언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론의 평가를 자주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이론(theory)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일반적 오해를 불식시켜야만 하겠다. 그 오해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니, 이것은 단지 이론일 뿐이잖아!”라는 표현에 반영되어 있다. 이 표현은 일반인들이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흔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 단순한 추측, 또는 육 등을 의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과학에서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과학자들이 이론을 지칭할 때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학에서 이론이란 일련의 데이터를 설명하고 미래의 실험 결과를 예언하는 데 사용하는 상호 관련된 개념들의 집합이다. 가설(hypothesis)은 (보다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이론으로부터 도출한 예언이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이론은 그 이론으로부터 도출한 많은 가설들이 확증되어 온 것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의 이론적 구조는 많은 가설들이 확증되어 온 것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의 이론적 구조는 많은 관찰 결과와 일치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가 이론으로부터 도출한 가설과 상충되기 시작할 때, 과학자들은 데이터에 대한 보다 우수한 해석을 제공해 주는 새로운 이론을 구성하고자 시도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과학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이론은 어느 정도 확증되어 온 이론이며 가용한 데이터와 상충되는 예언을 많이 내놓지 않는 이론이다. 이론은 단순한 추측이나 육감이 결코 아니다.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일반인과 과학자 사이의 이러한 차이가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몇몇 기독교 원리주의 신봉자들에 의해서 자주 악용되기도 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진화란 이론일 뿐이다”이었다. 이러한 진술은 “이론”에 대한 일반인의 용법, 즉 “단순한 추측”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에 근거한 진화론은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서의 이론이 아니다(정반대로 일반인들의 의미로 볼 때는 진실이라고 불러야 한다.). 과학적 의미에서의 이론인 것이다. 진화론은 거대하고도 다양한 데이터의 집합이 지지하고 있는 개념구조이다. 다른 어떤 억측들과 마찬가지인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지질학, 물리학, 화학, 그리고 모든 측면의 생물학을 포함한 수많은 학문들의 지식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저명한 생물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73)는 “생물학에서는 진화에 비추어보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s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라는 제목의 유명한 논문에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크리듬 이론
한 가지 가상적인 사례가 반증 가능성 기준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 한 학생이 내 연구실 문을 노크한다. 내 연구실에 같이 있는 동료 교수는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노크할 때 사용하는 리듬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문을 열기 전에 그 동료 교수는 노크한 사람이 여학생이라고 예언한다. 문을 열고 보니 정말로 여학생이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인상적이라고 말은 하겠지만, “노크리듬 이론”이 없이도 우연히 맞힐 가능성이 50%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 정색을 하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그는 더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린다. 그는 22세가 안 된 남자라고 예언한다. 문을 열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남학생을 발견한다. 우리 학교에는 22세가 넘은 학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예언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에는 젊은 남학생들이 상당히 많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나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마지막 검증을 제안한다. 다음번의 노크 소리에 뒤이어 그는 “여자이고, 나이는 30세, 키는 160cm, 왼손에 책과 지갑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 노크를 하였다”라고 선언한다. 문을 열고 그 예언을 완벽하게 확증한 후에 나의 반응은 이제 완전히 달라진다. 동료가 속임수를 써서 그 사람들이 순서대로 내 연구실에 나타나도록 사전에 배치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나는 이제 완전히 인정한다고 말한다.
내 반응에서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동료의 세 가지 예언은 “그럴 수도 있지”에서부터 “정말로 대단하군”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세 반응을 초래한 것인가? 그 답은 예언의 상세함과 정확성과 관련이 있다. 예언이 상세할수록 확증될 때 더욱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상세화는 반증 가능성과 정비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예언이 보다 상세하고 정확할수록, 그 예언을 반증할 수 있는 잠재적 관찰이 많아진다. 예컨대, 키가 160cm이면서 30세가 아닌 여성은 상당히 많다. 내가 나타낸 여러 반응을 통해서 암묵적으로 나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의 수가 최대가 되는 예언을 하는 이론에보다 감명받을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결국 좋은 이론이란 자신의 반증 가능성에 노출시키는 예언을 하는 것이다. 나쁜 이론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위험한 궁지에 빠뜨리지 않는다. 지극히 보편적인 예언을 함으로써 항상 사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거나(예컨대, 다음에 연구실을 노크할 사람은 100세가 안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반증 가능성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될 수 있는 방식으로 진술된다(벤저민 러쉬의 예에서처럼). 실제로 어떤 이론은 반증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됨으로써 더 이상 과학적이라고 간주할 수 없게 된다.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 짓는 기준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반증 가능성 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심리학 전반 그리고 제1장에서 다룬 프로이트에 관한 논의와 직접 연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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