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자유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성 원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자유분방하고 유용한 함의 중의 하나가 과학에서의 실수는 결코 죄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왔다. 철학자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 1995)은 과학의 요체가 “공개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이 수정을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데이터가 이론과 일치하지 않을 때 그 이론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집단적으로 세상의 본질을 보다 잘 반영하는 이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 수준에서도 반증 가능성 원리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일상생활에서의 대처방식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이 절의 서두에서 자유분방(libera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단어에는 특정한 의도를 반영하는 개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전개한 생각들은 과학은 넘어서는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념이 세상의 증거와 상치될 때 그 증거를 부정하고 역기능적인 생각에 막무가내로 집착하기보다는 그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사회 문제와 개인 문제들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순간에, 예컨대 여러분이 열띤 반론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고 있는 순간에, 어떤 결정적인 사실이나 증거에 대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얼마나 있는가?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였는가? 한발 물러서서 여러분이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었으며 상대방의 해석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처음의 실수를 옹호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합리화에 몰입했을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논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여러분이 잘못 생각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최후의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논쟁에서 여러분과 상대방 모두는 어느 생각이 진리에보다 근접한 것인지에 대해서 더 많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만일 논박이(과학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공개되지 않는다면, 만일 참인 신념과 거짓인 신념 모두가 똑같이 격렬하게 옹호된다면, 그리고 (이 예에서와 같이) 만일 논쟁의 결과에 정확한 피드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본질과 조화를 이루는 신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많은 사적인 대화와 공개적 논쟁이 혼란스럽게 되는 이유이며, 심리학이라는 과학이 소위 상식에 비해서 행동의 원인을 보여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이유이다.
만일 우리 신념이 역사에 의존적이라는 사실, 즉 그 신념은 단지 우리가 언제 어디서 성장하였는지에 따라서 초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증거에 직면해서 우리 신념을 보다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는 신념의 역사적 수반성을 포착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평가하도록 설계된 질문지를 가지고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 질문지의 한 가지 문항 예는 다음과 같으며, 응답자들은 강력하게, 보통, 또는 약간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응해야 한다 : “비록 나의 환경(가정, 이웃, 학교)이 달랐더라도, 지금과 동일한 종교적 견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종교가 환경에 수반되는 신념의 고전적 사례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예컨대, 기독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이슬람교는 아프리카와 중동에, 그리고 힌두교는 인도에 밀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동료들은 여러 연구에서 대학생 집단의 대략 40~45%가 자신의 종교적 견해는 역사적 상황(부모, 국가, 교육 등)에 의해서 조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얻어왔다.
과학에서 반증하는 태도가 유용한 까닭은 과학이 처음부터 완벽한 이론을 조준하기보다는 틀린 가설을 배제시킴으로써 발달하기 때문이며, 특히 이러한 태도를 어떤 문제를 연구하는 초기 단계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삶의 많은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최선의 수행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구체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수행 오류는 훨씬 용이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필가 닐 포스트만(Neil Postman, 1988)은 의사가 “완벽한 건강”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을 찾아내는 데는 꽤나 유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변호사는 “완벽한 정의(justice)”를 정의하는 것보다 부당성을 지적하는 데 상당한 유능성을 보인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반증하는 태도가 과학자들에게 유용한 것이다. 특히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잘못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즉 잘못된 신념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과학자가 취해야 할 매우 유용한 접근법이기 십상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이 정상적이며, 과학 발전에서의 실제 장해요인은 자신의 신념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는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인간의 선천적인 성향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왔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성을 배격해야 하며, 노벨상 수상자인 피터 메더워(1979)는 과학자들에게 “한 가설이 참이라는 신념의 강도는 그것이 참인지 아니면 거짓인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성을 배격해야만 한다고 천명하였다.
메더워가 설파하고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코미디언 스티븐 콜버트(Stephen Colbert)는 2005년 10월 17일에 방영된 자신의 토크쇼에서 “진실다움”(truthiness)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Zimmer, 2010). 진실다움이란 “어떤 대상의 자질이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아무 증거도 없이 참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Manjoo, 2008). 메더워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과학이 진실다움을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다움이 그 어느 EO보다 만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과학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심리학에서 가장 명망 있는 과학자들 대부분은 메더워의 충고, 즉 한 가설이 참이라는 신념의 강도는 그것이 참인지 아니면 거짓인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왔다. 아자르(Azar, 1999)는 저명한 실험심리학자인 로버트 크라우더(Robert Crowder)의 경력에 관한 글에서 그의 절친한 동료인 마자린 바나이(Mahzarin Banaji)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 “그 친구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덜 방어적인 과학자이지요. 자기 이론이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실험 결과가 제한적이거나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 찾아낸다면, 그 친구는 환희에 들떠서는 그 사람하고 자기 이론을 장사 지낼 계획을 세울 겁니다”. 아자르는 어떻게 크라우더가 전범주적 음향 저장(precategorical acoustic storage)이라고 부르는 기억성분에 관한 이론을 개발하고는 자신의 이론을 반증하는 연구들은 신중하게 설계하였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내과 의사 제롬 그룹맨(Jerome Groopman, 2009)은 질병의 진단 과정에서 반증적 태도가 얼마나 실용적이고 유용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따라서 의사는 의학의 역사에서 자신이 추출한 데이터의 품질과 중요성을 의심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 가장 유익한 순간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으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진단과 상반되는 핵심 정보를 잘못 기가 하거나 환자는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다윈보다 훨씬 앞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하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생각을 즐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교양 있는 사람의 징표이다”라고 말하였다.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aynes)는 대공황 시절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사실이 변할 때 나는 내 생각을 바꿉니다. 선생은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응답함으로써 반증적 태도를 보다 유머러스하게 예증하였다(Malabre, 1994).
그러나 반증적 태도가 항상 모든 과학자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을 특징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관한 지식을 밝히는 과학의 독특한 힘은 과학자들이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즉,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결과 해석에서 결코 편파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류를 범하는 과학자들이 억제와 균형의 과정, 즉 다른 과학자들이 항상 그들의 오류를 비판하고 제거해 주는 과정에 묶여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철학자 다니엘 데닛(2000)은 모든 과학자들이 로버트 크라우더와 같은 객관성을 나타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동일한 논지를 펼치고 있다. 데닛(2000)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 “과학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발생하는 오류의 원천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결과를 오염시키려는 유혹과 편견을 강제로 차단시키도록 자신의 두 손을 묶어버리는 정교한 시스템을 고안해 왔다”. 과학의 힘은 과학자들이 특별히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지식과 결론을 끊임없이 반복 확인하는 사회적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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