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나,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해야 할 일을 해내고, 누군가를 만나며 웃지만, 마음 한켠엔 알 수 없는 허무가 깔려 있다.
그 공허함은 성공의 부족 때문도, 인간관계의 결핍 때문도 아닐 때가 많다.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때로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
이 질문의 뿌리를 탐구한 심리치료가 바로 **실존적 심리치료(Existential Psychotherapy)**다.
1️⃣ 실존적 심리치료란 무엇인가
실존적 심리치료는 인간의 내면을 병리로 보기보다, ‘삶의 조건 속에서 존재하는 한 개인’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대표적으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롤로 메이(Rollo May), 이르빈 얄롬(Irvin Yalom) 등이 이 접근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마주하는 네 가지 ‘실존적 조건’을 말한다.
- 죽음(Death) –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 존재다.
- 자유(Freedom) –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만, 동시에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 고립(Isolation) –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완전한 이해와 합일은 불가능하다.
- 무의미(Meaninglessness) – 인생에는 보장된 목적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
실존적 심리치료는 이 네 가지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 불안을 ‘존재의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을 돕는다.
즉, 문제를 없애려 하지 않고, 그 문제 속에서 ‘살아있음의 감각’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2️⃣ “불안은 병이 아니라 신호다” — 존재적 불안의 의미
내가 처음 실존적 심리치료 개념을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거였다.
“불안은 병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우리는 흔히 불안을 ‘없애야 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실존적 관점에서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이 의식적으로 존재를 자각할 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내가 삶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을 때는 불안이 줄지만,
진짜 나답게 살고자 결심한 순간, 오히려 불안이 커진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려 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다.
그건 “나는 누구로 살고 싶은가?”라는 실존적 질문이 나를 향해 던져지는 순간의 떨림이다.
3️⃣ 나의 경험 — ‘의미’를 잃었을 때 시작된 탐색
몇 해 전, 나는 모든 게 안정적으로 보이던 시기에 이상하게 공허했다.
회사 생활도 순조로웠고, 관계에서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게 다인가?’라는 질문이 들었고, 그때부터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읽은 책이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가진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의미를 **‘주어지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실존적 관점에서는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내 일에 의미를 다시 부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문장을 만들겠다는 태도.
그 태도가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했다.
4️⃣ 상담 현장에서의 활용 — 존재의 대화로 이끄는 법
실존적 심리치료는 특정한 기법보다 ‘태도’가 중심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 함께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내담자가 “무의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할 때,
인지치료라면 ‘부정적 사고의 교정’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실존적 치료자는 “무의미하다는 건, 당신이 진짜 의미를 찾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 하나로, 내담자는 자신 안의 공허함을 ‘문제’가 아닌 ‘탐색의 출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존적 상담의 핵심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게 돕는 것이다.
죽음, 고립, 자유, 무의미 — 이 불안을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인간은 더 강하고 따뜻한 존재로 성장한다.
5️⃣ 실존적 태도로 살아가기 — 일상 속 적용법
실존적 심리치료는 상담실을 넘어,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다음의 작은 실천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 불안을 억누르지 말고 바라보기
→ 불안은 삶이 “지금, 중요한 선택의 시기야”라고 알려주는 신호다. - 의미를 ‘찾기’보다 ‘만들기’
→ 완벽한 직업, 완벽한 사랑은 없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 -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산다
→ 얄롬은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만드는 의식”이라고 했다.
‘언젠가 끝날’이라는 사실이 오늘을 더 진하게 만든다.
6️⃣ 마무리 — 존재한다는 것은 용기다
실존적 심리치료는 결국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불안하고, 외롭고, 때로는 무의미함에 시달리는 이유는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을 없애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것.
그것이 실존적 심리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을 묻는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된다.”
— 빅터 프랭클
오늘 당신이 조금 불안하고, 공허하고, 외롭다면
그건 당신이 ‘진짜 나’로 살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은 존재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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