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석한 대로 본다.”
이 한 문장은 인지치료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의 대부분은 외부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권석만 교수의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에서 소개된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 는
1970년대 아론 벡(Aaron Beck)이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며 시작된 접근법이다.
그는 내담자들이 "나는 실패자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같은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에
지배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생각들은 사실이 아닌데도,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철저히 조종하고 있었다.
💭 ‘생각-감정-행동’의 연결 고리
인지치료는 인간의 심리 문제를 비합리적 사고에서 찾는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그 원인은 대개 현실보다
‘생각의 왜곡’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상사가 인사를 받지 않았다고 하자.
A는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B는 ‘내가 뭘 잘못했나 봐. 나를 싫어하시는 거야’라고 해석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B는 자기 비난과 불안을 느끼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이 차이를 만든 건 사실이 아니라 사고의 해석 방식이다.
인지치료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비합리적 사고의 유형들
권석만 교수는 인지치료의 대표적 사고 왜곡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흑백논리적 사고 – 모든 것을 0 아니면 100으로 나누어 보는 경향.
("완벽하지 않으면 난 실패자야.") - 과잉일반화 – 한 번의 실패를 인생 전체로 확장하는 생각.
("면접에서 떨어졌어. 난 인생 전체가 끝났어.") - 선택적 추상화 – 부정적인 부분만 확대해서 보는 습관.
("다들 웃었지만, 그 친구가 찡그린 표정만 보여.") - 감정적 추론 – 감정을 사실로 착각하는 오류.
("불안하니까, 분명 뭔가 잘못된 게 있을 거야.") - 당위적 사고 – ‘~해야 한다’는 경직된 신념.
("항상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해.")
이러한 사고는 스스로를 옭아매고,
결국 불안·우울·분노 같은 감정을 악화시킨다.
🪞 나의 경험 — ‘생각의 함정’을 알아차리다
나는 몇 년 전, 업무 스트레스로 극심한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다.
작은 실수에도 “나는 무능하다”, “팀에 폐만 끼친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밤마다 자책하며 일을 붙잡았지만, 피로만 쌓였다.
그때 한 상담 선생님이 내게 “그 생각이 진짜 사실일까요?”라고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나는 내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감정이 만들어낸 추론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실수를 하면 일단 멈추고,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이건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이 일이 나의 전부를 말해주진 않는다.”
이 단순한 문장이 내 마음의 균형추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감정보다 현실적인 사고로 자신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 인지치료의 실제 활용 — ‘생각 기록표’
인지치료에서 자주 쓰는 도구 중 하나가 **‘인지기록표’**다.
이는 감정이 요동칠 때,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방법이다.
상사가 인사 안 함 | 나를 싫어하나 봐 | 불안, 슬픔 | 사실 근거 없음 | 피곤했을 수도 있다 | 불안이 줄어듦 |
이 기록을 꾸준히 하면,
‘감정의 자동 반응’을 멈추고 ‘생각의 선택권’을 회복할 수 있다.
권석만 교수는 이런 과정을 **‘인지적 재구조화(cognitive restructuring)’**라고 부른다.
즉, 왜곡된 생각을 찾아내어 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바꾸는 과정이다.
🌱 일상 속 인지치료의 실천
인지치료는 단지 상담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기법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
- 자기 대화 점검하기: ‘나는 항상 실패해’ 같은 말을 들으면,
‘항상?’ ‘정말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을까?’라고 되묻는다. - 사실과 해석 구분하기:
“그가 나를 무시했다”는 것은 해석이다.
사실은 “그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이다. - 긍정적 자기 진술 연습:
“실수했지만, 배울 수 있었어.”
“이번엔 힘들었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이런 작은 연습들이 쌓이면,
마음은 점점 더 유연하고 회복탄력적으로 변한다.
💡 인지치료가 주는 메시지
인지치료는 말한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 바뀌고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늘 ‘상황의 피해자’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사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를 물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이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권석만 교수의 말처럼,
“심리치료의 목표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의 렌즈를 닦는 일이다.”
✨ 마무리
인지치료는 단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검증하고, 다시 구성하는 지적인 과정이다.
삶의 문제는 언제나 생기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사고 틀이 유연해질 때
감정도, 행동도, 결국 삶의 질도 함께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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