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가족은 왜 나를 가장 힘들게 할까 – 가족치료 이론을 딸의 시선에서 다시 읽다

율미로그 2025. 10. 17. 14:01

이 글은 권석만의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중 ‘가족치료이론’을 주제로,

심리학적 통찰과 나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에세이입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따뜻함과 안정감을 상징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에겐 집이 가장 편안한 휴식처지만, 어떤 딸들에게는 가족이 가장 큰 스트레스의 근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권석만 교수의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에서 가족치료를 설명하는 장을 읽다가 문득 멈춰버린 문장이 있었다.

“가족은 한 명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패턴이 만들어내는 체계적 결과다.”

나는 늘 ‘왜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왜 모든 갈등은 내게로 떨어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치료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 구조는 무엇일까?”


나는 왜 늘 가족의 중재자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가족 안에서 나는 ‘착한 딸’, ‘말 잘 듣는 아이’, ‘감정 조절이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다투면 사이에서 말려야 했고, 동생이 속상해하면 달래주는 역할도 나였다.

그 당시엔 그것이 내가 성숙해서 혹은 책임감이 강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치료에서는 이것을 **역할 고정(Role Fixation)**이라고 설명한다. 가족은 각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부여한다.

  • 잘 삐치는 사람(감정 폭발형)
  • 눈치 보는 사람(조정자)
  • 가만히 있는 사람(회피형)

나는 그 중 ‘조정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역할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내 감정보다 가족의 감정이 우선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엄마가 울면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아빠가 화내면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돌아보게 되고, 동생이 힘들어하면 나도 따라 무거워졌다.

그런데 정작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 왜냐면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

가족치료 이론에서는 가족 간에 감정이 쉽게 얽히는 현상을 **'삼각관계(Triangulation)'**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갈등을 겪을 때 제3자를 끌어들여 관계를 안정시키는 구조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 엄마가 속상하면 → 나에게 말한다 → 나는 아빠에게 전달한다.
  • 동생이 화가 나면 → 나에게 말한다 → 나는 엄마를 설득한다.

즉, 나는 가족의 감정을 순환시키는 통로 역할이었다.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나 하나가 모든 감정을 떠안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치료에서는 이 상황을 이렇게 조언한다.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감정을 돌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처음엔 이게 너무 이기적인 조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의 감정을 받아주는 게 결국 엄마를 돕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중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서로 직접 대화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조금씩 반응 방식을 바꿨다.

  • 엄마가 속상한 이야기를 꺼내면 → 옛날처럼 “그래 엄마 속상했겠다…”가 아니라
    → “그 얘기는 엄마가 직접 아빠한테 말해봤어?”라고 되묻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엄마도 내게 감정을 *“전가”*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가족치료는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이런 “작은 관계 방식의 수정”에서 시작된다.


가족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패턴을 관찰하라

책에서는 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직접 감정에 대응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 **‘관찰자 시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감정으로 싸우지 말고, “지금 우리 가족이 또 어떤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가?”를 바라보라.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엄마는 화가 나면 말을 길게 한다.
  • 아빠는 그 말을 들으면 조용히 방에 들어간다.
  • 나는 그걸 보면 불안해서 말리러 나간다.

이게 반복된다면,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아, 우리 집 패턴 또 시작됐네. 이번엔 내가 끼지 말아볼까?”

이렇게만 생각해도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관찰자가 되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가족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 역할’을 재정의하자

가족치료의 핵심은 이것이다.

“한 사람이 달라지면, 체계 전체가 변한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늘 하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변화한다.

나는 결국 이렇게 마음먹었다.

  •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중재자가 아니다.
  • “내가 도울 수 있을 때는 돕지만, 감정의 쓰레기통은 아니다.”
  • “가족을 사랑하지만, 내 마음은 나의 공간으로 지킨다.

이건 차갑거나 거리두기식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책임 분리다.


마무리 – 가족도 결국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가족치료가 알려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니까 평생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도 하나의 관계일 뿐이며, 건강한 거리감이 있을 때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다.

혹시 지금도 가족 때문에 힘들다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다.

  •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습관일까?
  • “이 역할을 잠깐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족치료는 “가족을 고치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설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본 글은 권석만의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을 참고하여 작성한 개인적 해석이며,

상업적 목적 없이 심리학적 이해를 돕기 위한 콘텐츠입니다.